하느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죽 이도록 요청하셨습니까?

아버지와 아들 해변에

아브라함과 이삭

사람들은 종종이 이야기 때문에 하나님을 오도하는 견해를 얻습니다. 하느님의 요청은 윤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 창세기 22:2 )

모두 시작된 방법 ...

하나님의 약속

시간으로 돌아가서 몇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 보자. 그때 하느님 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복을 내리겠다. 그리고 네가 그에게서 아들을 얻게 해 주겠다. 나는 복을 내려 사라가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여러 나라의 임금들도 그에게서 나올 것이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너는 그 이름을 이사악이라 하여라. 나는 그의 뒤에 오는 후손들을 위하여 그와 나의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우겠다. 그러나 나의 이 계약은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너에게 낳아 줄 이사악과 세우겠다."

( 창세기 17:16,19,21 )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의 유일한 아들 이삭과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이삭이 태어나 기 전에 약속이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의도는 이삭을 살아있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약속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이 백 살 된 자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고? 그리고 아흔 살이 된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 창세기 17:17 )

아브라함의 행동에서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약속에 대해 다시 안심 시키 셨습니다. 이제 사라는 그랬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등 뒤 천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듣고 있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 많은 노인들로서, 사라는 여인들에게 있는 일조차 그쳐 있었다.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늙어 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 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 그러자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사라는 웃으면서, '내가 이미 늙었는데, 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 하느냐?

( 창세기 18:10-13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게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다시 생각 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다음 구절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여전히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제라 왕 아비멜렉 앞에서 사라가 동생임을 거짓말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임을당하는 것처럼 이삭은 없을 것이며 하느님의 약속은 깨질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라르 임금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다.

( 창세기 20:2 )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이곳에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라고는 도무지 없어서, 사람들이 내 아내 때문에 나를 죽일 것이다.' 하고 내가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 창세기 20:11 )
1 년 후,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바 꾸었습니까?

아브라함이 우리가 상상할 수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이삭이 자랐을 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충격적인 요청을하셨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즉각 응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행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유일한 아들 인 아들 이삭을 깊이 사랑했지만, 하느님에게서 그를 붙들 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 창세기 22:2,3,9,10 )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 창세기 22:12 )

성서에서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지만, 윤리적 인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가 요청하기 전에 할 수있는 것과 할 수없는 것을 아 셨습니다. 어떤 행동이나 말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 께서 다른 사람을 아시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제가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당신께서는 헤아리시고 당신께는 저의 모든 길이 익숙합니다. 정녕 말이 제 혀에 오르기도 전에 주님, 이미 당신께서는 모두 아십니다.

( 시편 139:2-4 )

동시에 아브라함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의 약속이 항상 성취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이삭과 그의 후손들과 계약을 맺 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하느님 께서 지키실 것임을 분명히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죽을 수 없습니다. 아니면 죽을 것이지만 다시 일어납니다. 또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에 따라 다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와 이삭이 돌아와서 희생이 하나님에 의해 제공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 창세기 22:5 )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 창세기 22:7-8 )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한이 시위는 우리에게 성경 독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얼마나 충실했는지 이해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아브라함의 행동과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 창세기 22:18 )

아브라함은 아들을 희생시키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의 희생을 희생하셨습니다 ...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이 마지막에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지만, 어떻게 그리고 언제 ...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사망'한지, 3 일 동안 하느님이 지적한 산으로의 여행 그리고 마지막 날에 3 일째에 '일어났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셋째 날에 일어나 셨습니다 ...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 창세기 22:4 )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 고린도전서 15:4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두려워하여 아들을 희생 할 준비가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유일한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요한복음 3:16 )